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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

유관순 열사 이야기 영화 항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유관순 열사 이야기 영화 항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출연

 

 

영화 항거 포스터

 

2019년 개봉한 영화 항거를 소개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이후 3평도 안 되는 서대문 형무소 감옥 8호실에 갇힌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이야기다.

 

연출은 조민호 감독

유관순 역은 배우 고아성이 맡았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영화 항거는 철저한 역사절 사실 고증을 한 영화이므로 따로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 줄거리와 영화에 언급되지 않은 당시 역사적 사실을 섞어 아래 내용을 기재한다.

 

즉 아래 내용부터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운동이 시작된다.

당시 17살, 이화학당 고등과에 다니고있던 유관순 열사도 이 운동에 참여한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이후 3월 5일 학생 연합시위가 벌어졌고 유관순 열사도 이에 참여하여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곧 석방된다.

 

계속 학생들의 시위가 심해지자 일제는 학생들의 참여를 저지하고자 전국에 휴교령을 내린다.

학교에 갈수없게되자 유관순 열사는 3월 13일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관순 열사는 부친과 마을 어른들에게 서울에서 있었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병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는 것을 계획한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사촌언니 유예도와 함께 주민들이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후 1919년 4월1일(음력 3월 1일) 병천시장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하였다.

여기서 유관순의 부모님을 포함하여 19명이 사망하였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이날의 운동을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이라 부른다.

 

이 운동을 하다 유관순은 주동자로 체포된다.

 

1심에서는 5년형, 재심에서는 징역 3년형을 받은 유관순 열사는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이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이감된다.

 

영화 항거는 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는것부터 시작된다.

 

 

8호실 수감자들은 왜 서있을까?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 배정받은 유관순

방문이 열리자 유관순은 놀란다.

 

시청하던 나도 놀랐다.

어두침침한 방에 어두침침한 표정의 수십명의 사람들이 빈틈없이 촘촘히 서서 유관순을 바라본다.

 

머릿속에서는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방에 들어온 유관순

유관순은 왜 모두 서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된다.

 

방이 좁았던 것이다.

3평 정도의 방에 수용인원은 약 30명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일부는 누워서 자고 일부는 서있다.

서로 교대하면서 잔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당시 서대문 형무소의 적정 수용인원이 500명이었는데 실제는 3,000명을 수용했으니 일제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분, 직업, 남녀노소 구분없는 3.1 운동

 

8호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수감되어있었다.

 

수원에서 30명의 기생과 함께 시위를 주도했던 김향화

(김새벽이 향화 역을 맡았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김예은이 애라 역을 맡았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다방에서 차를 따르던 이옥이

(정하담이 옥이 역을 맡았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장사하다가 아들을 잃고 만세운동을 한 만석모, 임신한 채 수감생활을 한 임명애  등 다양하다.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 없이 모두가 3.1일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은 계속되고...

어느 날 유관순은 노동에 지원한다.

 

일제의 입장에서 질이 좋지 않은 죄수 유관순에게는 노동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관순은 노동할 기회를 얻기 위해 그동안 거부하던 일본말로 부탁한다.

 

왜 일까?

좁은 방에서 지내기 답답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날짜를 알기 위해서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1년 전쯤 3월 1일에 만세운동을 했던 것처럼 감옥 안에서 3월 1일에 만세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날짜를 알아낸 유관순은 결국 1920년 3월 1일에 감옥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한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이에 3천 명의 수감자들의 만세소리가 서대문 형무소 밖으로 퍼져나갔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형무소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에 전차 운행이 멈추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 때문에 유관순을 포함 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고 한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유관순은 이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어린 나이인 18세에 감옥 안에서 순국하게 된다.

 

당시 특별사면으로 형기가 반으로 줄어든 1년 6개월이 되었는데 출소를 이틀 앞둔 1920년 9월 28일 생을 마감하였으니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항거 스틸 이미지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는 내내 안타깝고 화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항거를 통해서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